산사태

회장 /22기/ 3 3,910

           7기  최 문 항

          

  어두워지기 시작한 주차장 아스팔트 위에 후드득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세찬 바람이 휘-익 불어와 마른 나뭇잎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고 갔다.

  “사장님 다음 월요일부터 밤 반을 돌리려면 아무래도 한국사람이 한 명 있어야겠는데요, 그래야 안심하고 열쇠를 맡기죠.

“전에 나오던 김씨 한번 연락해보지그래”

나는 귀찮은 듯이 조 반장에게 알아서 한사람 구해 보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에 조 반장이 중늙은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내방으로 들어 왔다.    

  “사장님 오늘부터 밤 반 책임 맡을 차 선생인데요.

“반갑습니다. 폴 박입니다,

내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네, 차 성근입니다. 사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차 성근이라! 어디서 듣던 이름 같은데, 밤늦게까지 수고 좀 해 주시오.

  사무실을 돌아 나가는 차 씨가 왼발을 쩔룩이는 것 같았다. 저녁 다섯 시가 조금 지났는데 밖은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우선 12월 한 달은 조 반장이 정오에 출근해서 밤 여덟 시까지 밤 반 사람들을 훈련시키기로 했다.

  한 주일이 지나갔다.

  “그래서 미스터 차는 불평 없이 밤일 잘하고 있나?

  “괜찮게 하던데요 어디서 배웠는지 남미말도 잘하고요 애들보고 자기를 ”캐피탄 차“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그분 옛날에 한국군 장교 출신이래요, 아주 재밌는 분이더라고요.

-한국군 장교 출신이라, 그 옛날 내가 알던 차 성근은 양구에서 증발했는데 아마 동명이인이겠 지, 그때 차 소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니 말이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사장님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미스터 차가 몇 시에 출근하지?

  “오후 네 시요.

  “그 친구 이력서 가져오고 출근하면 내방으로 좀 오라고해

  - 차 성근 1947년생 충북청주출신 육사 졸업 콜롬비아에서도 살았고 미국에 들어 온 지는 일 년이 조금 지났군. 육사 출신이라! - 

  오후에 미스터 차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얼굴이 수척하고 머리는 반 이상 벗겨져서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차 형! 밤일 힘들지 않아요?

  “할 만 합니다, 멕시코 친구들이 말도 잘 듣고 아주 착해요.

  “남미 말을 한다면서. 남미 어디 있었어요? 얼마동안이나.

  “여기 저기 머물렀지요. 처음에는 브라질로 갔다가 콜롬비아로해서 중남미 과테말라에도 좀 있었고요.

  “아니 왜 한곳에 정착을 못하고?

  “젊어서 꿈을 잃어버리고 나니까 방랑벽이 생겼나 봐요, 한곳에 머무는 것처럼 따분한 일은 없었으니까요.

  미스터 차는 그렇게 구름 속에 달 가듯 한국에서 남미로 중미에서 미국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럼 이곳에도 오래는 안 머무르겠구먼.

“글쎄요, 이제는 어디건 한곳에 정착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가 않군요.

그는 어딘지 모르게 지쳐 있는듯했다.

  “한국으로 돌아 갈 생각은 없나? 혹시 가족이나 친척이 있다면…”

  “아무도 없어요, 떠나 온 지도 오래고.

  그는 담배를 한 대 꺼내 들고 만지작거렸다. 내가 얼른 불을 그어댔다. 그가 한 목음 깊이 빨아들이더니 거침없이 푸-우하고 길게 내뿜었다. 오래간만에 맡아보는 담배연기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졌다.

  “별명이 캐피탄 차라고?

  나는 혹시나 이 사람이 그때 양구 북쪽에서 증발(蒸發)했던 차 소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슬쩍 이야기를 유도 해봤다.

  “이거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갔네요, 나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마도 지난 이야기를 꺼내기가 싫은 것 같았다.

  “차형 이렇게 시간 내기도 쉽지 않은데 우리 요 앞에 나가서 저녁이나 하고 옵시다.

  조 반장을 불러서 여덟 시 전에 돌아온다고 말해 주고 길 건너편에 있는 데니스식당으로 걸어갔다. 아직은 저녁이 일러서 그런지 식당안은 한가했다.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두 개 시켰다.

“박 사장님은 미국 온지 오래됐습니까? 이렇게 큰 공장을 일으키셨으니 성공하셨네요!    

 미스터 차가 처음으로 나 개인에 대한 흥미를 보였다.

  “성공이라고 할 거야 없지만 몇 십 년 동안 한 가지 일만 했으니 나도 참 미련하지. 내가 1972년에 미국으로 건너왔으니까 이제 30 년도 넘었군.

  1972년이라, 제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군요.

  “병원에는 왜, 어디가 아파서?

  나는 약간 흥분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 사람이 정말 흙탕물 속으로 빠져들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차 소위라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도도하고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약해진 모습을 내게 보여 주는 것이 괴롭지 않을까? 나를 알아본다면 최소한의 체면마저도 짓밟히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는 아직도 한국군 장교였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자기를 “캐피탄 차”로 불러 달라고 하지 않는가! 다행히 아직까지는 박현규 소위를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미국 이름으로 “폴 박”이고 그 이상은 알리지 않기로 속마음을 다져먹었다.

“강원도 산골 깊숙이 들어간 곳에서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산사태와 물난리에 떠내려가고 깔려 죽고 난리가 났었지요, 저도 그 와중에 물에 떠내려갔습니다.

  미스터 차는 그날 밤늦게까지 옛날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는 처음 듣는 무용담처럼 양구 이야기를 들었다. 몇 번을 나도 그 현장에 있었노라고, 내가 박현규라고 고백하고 싶은 것을 끝까지 잘 참아냈다.

****

  연대 본부를 떠나 한 시간이 넘게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올라와 도착한곳이 내가 소대장으로 부임해 온 1대대 3중대 제2소대가 진지작업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원산에서부터 꾸불꾸불 물줄기를 따라오다가 군사분계선을 지나 내려오면 문등리 계곡으로 연결되고 다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양구 호에 다다른다.

  트럭이 골짜기를 더듬어 올라와 민통선을 지나고 군사분계선 가까이 있는 계곡 안쪽 후미진 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넓은 공터 여기저기에 구덩이를 파 놓은 것을 보니 진지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조그마한 동산 뒤로 점점 높은 돌산이 연결되어있고 앞쪽에는 북에서 남으로 많은 물이 흘러내리는 깊은 계곡이 있었다. 남과 북이 적과 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금방이라도 저쪽 숲 속에서 공비가 튀어나올 것 같고 길 양쪽으로 검게 녹 쓴 철조망에 붉은 글씨로 “지뢰”라고 쓰고 그 밑에 해골을 그려 넣은 경고판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정오쯤 되었을까? 점심식사를 트럭에 싣고 중대장이 나타났다. 큰 알루미늄 통 두 개와 네모난 누런색 플라스틱 식기 그리고 다 찌그러진 국그릇이 내려지고 취사병이 뭐라고 고함을 지르니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천천히 밥을 받아들고는 주변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때 중대장이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동안 소대장 없이 고생들 많았는데 이번에 너희들이 기다리던 소대장님이 왔다. 박 소위 인사하지!”

  나는 한발짝 앞으로 나섰다. 두 팔을 뒤로하고 턱을 바짝 끌어당겨 한껏 위엄을 갖추고 헛기침을 한번 했다.

  “방금 중대장님으로부터 소개받은 박현규 소위다. 지척에 적과 대치한 상황 속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작업과 훈련에 열중하는 제군들을 보니 마음 든든하다. 앞으로 젊음을 다 바쳐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자. 어제는 선배들이 이 자리를 지켜주었고 오늘 우리가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할 때 우리 부모 형제들은 후방에서 생업과 각자 맡은 임무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후배들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똑같은 일을 맡아 줄 것이니 나만 손해 보고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고 오늘 내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해 주기 바란다. 이상!”

    내 인사말이 너무 거창했는지 혹은 전혀 흥미가 없었는지 녀석들은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소대원들은 서너 평 넓이의 구덩이를 파놓고 산에 올라가 통나무를 베어다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원형으로 벽을 쌓고 그 안에 박격포를 설치했다. 나도 소대원들과 함께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수차례 언덕을 오르내리고 보니 온몸이 쑤시고 특히 벗겨진 어깨에서는 피가 찔끔거려 몹시 괴로웠다.

  어떻게 된 일인지 우리 소대원들은 저녁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한 명도 안 남고 특수 임무소대 막사에 가서 청소와 빨래부터 총기손질 등 잡일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본래 임무인 박격포진지를 짓는 일보다 일과가 끝난 다음에 해야 하는 일을 더 싫어하고 힘들어했다.

  소대장 막사는 대여섯명은 들어 갈만한 공간이 있고 책상과 침상이 잘 준비된 야전용  A 텐트였으나 소대원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천막의 골격을 세우고 각 병사에게 지급된 두꺼운 비닐 판초 우의를 거둬서 아무렇게나 지붕을 씌워 만든 움막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계곡 밑으로부터 뿌연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소대원들이 기거하는 텅 빈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에서는 정말 참아내기 어려울 정도의 악취가 풍겨나고 있었다. 쾌쾌한 땀 냄새와 수십 일을 씻지 않은 발꼬락 냄새, 그리고 수컷들이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뒤엉켜서 도저히 숨을 쉴 수없을 만큼 고약했다. 텐트 안에는 어느 물건 하나 제자리를 잡아놓은 것이 없고 침구도 펼쳐놓은 그대로였다. 소총받침대로 다가갔다, 손전등으로 총구 안을 비춰보니 뻘겋게 녹이 슨 것이 이삼 주 동안은 병기 손질을 하지않은 것이 분명했다. 옆에 있는 총들을 일일이 조사해 봤다. 어느 것은 노리쇠 부분이 들러붙어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놈들이 소위 최전방을 지키는 병사들이란 말인가? 도대체 장교들은 뭘 했기에 소대 전체가 이 모양이란 말인가? 괘씸한 생각에 안절부절 못하며 한참 동안 어두워진 막사 안을 서성거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주변이 시끌벅적하면서 소대원들이 천막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누군가 석유등에 불을 붙이고 아무렇게나 자신들의 침상을 찾아 걸터앉고 드러눕기도 하면서 왁자지껄하며 떠들다가 한 명의 병사가 나를 발견하고는 차렷하며 큰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주변이 조용해지면서 동작들을 멈추니 마치 돌아가던 활동사진이 정지된 것처럼 화면도 멎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좋아 편한 자세로들 앉아

소대원들은 잠시 웅성거리더니 침상 끝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연일 계속되는 작업에 수고가 많다. 너희들이 지금까지는 어떻게 내무반생활을 했는지 묻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오늘 일석점호를 끝낸 후부터는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각분대장을 통해서 내게 보고 되어야 한다. 또 내 지시 없이는 어떤 행동도 너희 맘대로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내가 소대장으로 부임한 이상 다른 소대의 일은 안 해도 좋다. 이 시간 이후 소대장이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할 터이니 나의 지시만 따를 것! 알겠나?”

  소대원 모두가 어리둥절하여 신통한 대답이 없다. 다시 목청을 높여서 알겠나?”하고 소리를 꽥 지르니 그제야 우물쭈물 답이 돌아왔다.

  “각분대장은 지금 즉시 내 천막으로 집합할 것. 이상!

  희미한 등잔불 밑에 제1분대장 곽 정남하사 제2분대장 이 진오하사 그리고 3분대장 이 영수병장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조금 있으니 대대 P.X에 막걸리를 사러 갔던 박찬영 병장이 헐레벌떡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탁자 위에는 왕 멸치, 썰어놓은 양파 몇 조각과 군대 고추장이 놓여있었다. 박 병장이 구해온 막걸리 한 주전자를 탁자 가운데 올려놓았다.

  “편이들 앉지!

  통나무를 대강 잘라 만든 의자에 다섯 명이 둘러앉았다.

  “오늘은 내가 각분대장들에게 신고하는 날이니 긴장들 풀고 간단하게 목이나 축여 보자고! 그동안 소대장 없이도 잘들 꾸려왔으니 지난 일도 이야기하고 또 내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말해주기 바란다.

  아무도 선 뜻이 나서는 자 없이 찌그러진 식기에 담긴 허연 막걸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잔씩 마시면서 천천히 시작해보자고, 어디 제1분대장부터 한마디 해보지 그래”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곽 하사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오싱께 참 존네요 맨날 옆 소대 눈치만 봤는디 이제 기 좀 펴도 되겄지요, ?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 진오하사가 나섰다. 그는 마치 나를 원망이라도 하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와~ 이제야 왔능교, 내 드러버서 군대생활 몬 할 뻔했다 아임니꺼”

  이 하사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박찬영 병장이 가로막고 나온다.

“이제는 특소 명령 안 받아도 되것지요? 지들은 뭐 카추샤라나 암튼 소대장님만 믿어유”    

Comments

김태균 /17기
주간 연재인가요? 아님 월간? 무척 기다려집니다
조현목 /22기
이어지는 스토리는 윗쪽에 첨부된 PDF파일을 열어 보시면 됩니다.
김태균 /17기
속편은 없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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